기존에 매고다니던 키스하링 백팩이 너무 무겁고 끈 부분이 뜯어질 것 같아서 당근 마켓으로 중고 백팩을 찾다가 큰맘 먹고 마크제이콥스 백팩을 거래하러 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보니 거래자로 추정되는 분이 쇼핑백을 들고 있길래 쪽지를 보냈더니 나에게 직접 와서 여성분일 줄 알았다며 내가 거래하러 온 사람이라고는 예상을 못 했다고 했다.

지난 번 키스하링 백팩을 사러 갔을 때도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과연 어떤 부분에서 나를 여성으로 추측하는 걸까? 내가 사려는 아이템? 아니면 채팅 말투? 평소에 생활하는 바운더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오해투성이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yang01.md#0152

중국에서 유학 왔던 게이친구가 본가에 갔다가 커밍아웃을 했는데 막상 집에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성소수자에 관련된 책자를 주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집에서 너무나 쿨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가 너 탑이니 바텀이니? 물어봐서 바텀이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노발대발 화를 내면서 '남자'가 돼가지고 여자처럼 다른 사람한테 삽입 당하는건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yang02.md#0153

"퀴어작가가 퀴어 작업, 퀴어 전시하면 그게 민중미술이지 뭐에요? 난 좀 세련된거, 굳이 퀴어라고 말 안해도 작업에 코드가 있는거 그런거 하려고해요." - OOO

yang03.md#0154

전시장에서 오랜만에 아는 형을 만났다. 그 형이 지난주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갔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목사님이 설교 중 동성애 혐오 발언을 심하게 해서 예배가 끝나고 형의 아내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따졌다고 한다. 정말 좋은 아내분을 만나셨네요. 그나저나 아내분이 따지실 동안 형은 뭐하고 계셨죠 근데 ...?

yang04.md#0155

작업을 위해 목소리로 젠더 교란이 가능한 퀴어 지인들을 섭외하던 중 두 명의 지인에게 거절을 당했다. 한 분은 본인의 목소리가 컴플렉스를 넘어서 바디 디스포리아를 느끼시는 분이었고, 다른 한 분은 트랜지션 (성전환수술)을 통해 새로운 성별에 만족해서 내가 원하는 작업과 결이 맞지 않아거절하겠다고 했다. 추후 전시장에 방문한 다른 퀴어 지인분께 이 에피소드를 얘기했더니, 거절하신 분들이 굉장히 기분이 나빴을 수 있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나의 이해도가 부족한 명백한 실수였다.

yang05.md#0160

작가 중에 타투를 시작한 게이 작가가 있다. 이 작가에게 다른 작가가 본인의 HIV 감염 여부와 약 복용 사실(약을 복용하고 있는 HIV 감염인은 감염 위험성이 없다)을 알리고 타투를 의뢰했다가 거절을 당했다는 얘기를듣고 당황했다. 타투를 시작하면 의뢰인들 중에 퀴어 당사자들도 많이 있을 텐데 HIV 감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모른 채 무지에 의한 차별을 행하게 된 상황인데 괜찮은 걸까? 퀴어 커뮤니티 내에 소문이 퍼져 몇몇 지인들은 그 작가를 차단하기도 했다.

yang06.md#0162

국비장학금으로 그래픽디자인 학원을 다니던 지인이, 강사들의 발언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줌 수업으로 전환한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물어봤더니한 남자 강사가 캐릭터를 그릴 때 여성의 신체에 대해 가슴은 이만큼 크게 그려야 되고, 다리는 이 정도로 얇게 그려야 한다며 끊임없이 여성 몸 편을 남발했다고 한다. 또 다른 강사는 로고 디자인 시간에 기업 로고를 만들어보는 실습 중에 무지개색은 동성애 코드라며 넣지 말라고 강요했다고한다. 

yang07.md#0164

해외 퀴어 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수상식에 참여하러 네덜란드에 다녀온 적이 있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남자친구가 통역을 해주러 사비를내고 함께 가게 되었는데, 시상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주최자가 갑자기 예정에 없던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한국에서 어떻게 만나게 됐냐는 질문이라 아무렇지 않게 게이 데이팅 앱으로 만났다고 했더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한국에서 게이 데이팅 앱을 사용할 수 있냐고 다시 물어왔다. 나는 그 순간 질문의 요점이 뭔지 몰라 예스 오브 코스로 대답하고 나머지 보충 설명은 남자친구가 영어로 뭔가 길게 마무리해 줬다. 시상식이 끝나고생각해 보니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었던 건지 아님 스마트폰 어플조차 개인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독재국가로 알고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설마 내가 북한에서 왔을 거라고 착각을 한거였을까? 시상식은 즐거웠지만 그 질문만큼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yang08.md#0250

가끔 여성 지인들과 학창 시절 얘기를 할 때 자주 등장하는게 등하교길에 만났던 바바리맨이다. 

나는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나왔는데도 같이 학교를 다녔던 여학생들과 얘기해보면 내가 느꼈던 등하교길의 온도차가 컸었다. 절대 남자들 앞엔 안나타나는 바바리맨. 그와중에 옆에 있던 게이 친구들이 하\~ 나도 보고싶은데 평생을 안나타나네 아쉽다 내가 잘 해줄 수 있는데 ... 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누군가에겐 위협적인 존재가 누군가에겐 와주길 바라는 존재라니. 나는 이 지점에서 게이커뮤니티와 페미니즘 사이의 충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yang09.md#0175

"작가님이 제시한 퀴어 사진가들 기획에 들어있는 작가들 사진은 각자의 작가적인 특징이 잘 안보여요. 이럴거면 뭐하러 작가들 섹션 구별해요? 그냥 이름 다 빼고 아카이브 전시를 하지." - OOO

yang10.md#0177

지인 전시장에 가는 길에 고양이가 뭔가를 신나게 갖고 놀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니 혼자 차 밑으로 숨어버렸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남겨진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참새였다. 나는 이 새를 도대체 어떻게 해줘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예전에 반려동물 커뮤니티에서 새를 키우는 분이 본인 새를 대리고 산책 나왔다가 평소 자기가 밥 챙겨주던 길고양이들에게 물려가 죽는 모습을눈앞에서 보고 패닉이 왔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인간이 없는 동물들의 생태계엔 귀여운 고양이도 강아지도 다른 동물들에겐 피해야 할 포식자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육식을 하는 반려동물들의 사료를 위해 다른 동물들을 도축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yang11.md#0316

이태원 발 코로나19 대유행 즈음에 나는 개인전을 오픈을 했고, 그때 이태원에 갔던 몇몇 지인들이 검사 및 격리 상태라 오픈 한 날 이후 한참이지나야 올 수 있었다. 전시 기간 동안 많은 관객들이 다녀갔고 나의 정체성을 아는 한 적어도 내 앞에서 코로나 관련 게이 혐오 발언을 한 사람은한 명도 없었다. 이때 내가 커밍아웃 한 퀴어로서 비교적 굉장히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 살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전시 거의 막바지에 한 지인 작가가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아니 진짜 게이고 뭐고를 떠나서 남자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성욕을 못 참아요?" 라는 질문을했고,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요즘도 가끔 저 질문이 떠오르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건지, 저 질문에 적절한 답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곤한다.

yang12.md#0317

미술계 지인이랑 대화하다가 내가 퀴어 지인들을 알게 될수록 자꾸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왜죽어요?" 라고 지인이 물었다. 자살도 있고 지병도 있고 ...라고 대답했더니, "에이즈로?"라고 내게 되물어서 요즘 시대에 에이즈로 죽는 사람은 없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불치병이라면서요?" 라길래 약 먹으면 관리 가능하다고,  이 대화 hiv 감염 작가들한테 얘기하겠다고 했더니 "몰라서 그러지 내가 어떻게 알아"라며 얼버무려버렸다.

yang13.md#0318

나는 2015년도에 부모님에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커밍아웃을 한 상태이다. 그날의 폭풍같은 분위기는 지금도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 후 퀴어 이슈 관련 작업과 전시를 여러 번 했지만 집에 알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4년 후 해외의 퀴어 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수상식 참여를 위해네덜란드로 가야 해서 결국 여차여차 작업 얘기와 수상 얘기를 했더니, 아빠가 "넌 왜 하필 그런 작업으로 그런 상을 타가지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게 만드냐"라며 화를 냈다. 몇 년이 지나도 난 여전히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구나라는 절망감이 밀려온 날이었다.

yang14.md#0319

프라이드 포토 어워드 수상 관련해서 한국 돌아온 후 몇달 뒤 공중파 라디오에 인터뷰 요청 들어와서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녹음하던 중 자연스럽게 커밍아웃 했더니, 나중에 자기네 프로그램과 한국 여건상 받아들일 준비가 안됐다면서 그 부분만 딱 잘라서 내보냈던 경험이 있다.

삭제된 부분의 질문은 "왜 이런 소수자 관련 작업들에 관심이 많냐" 어쩌고였고, 나의 대답은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당연히"라고 시작됐는데, 그순간 녹음실 밖에 있던 피디와 작가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자기들끼리 뭔가 주고받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 전에 포트폴리오도 다 넘기고 거기에 작업 설명까지 다 자세하게 써놨는데도 설마 그걸 만든 작가가 게이일거란 예상을 안한거였나 싶다가도 세상은 정말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걸 체감했다.

yang15.md#0327

동네 편의점 앞엔 귀여운 길냥이 가족이 살고 있다. 나도 오다가다 한 번씩 쓰다듬을 때도 있고, 이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며 담소를 나누는 주민들이 꽤 많다. 하지만 비둘기는 유해 동물로 지정되어 퇴치해야 한다면서 먹이주기를 금지하고 있다.

지인들과 길을 걷다가 비둘기를 마주치면 대다수의 지인들은 비둘기를 해충 보듯이 하면서 이리저리 피해 다닌다. 집에서 앵무새를 키우면서 새들이 먹다가 바닥에 흘린 것들을 다시 모아 베란다 난간에 비둘기 먹이로 두기 시작했다. 

미술관에서 단기 알바를 하던 중 실내로 날개 다친 비둘기가 날아들어오자 실내에 있던 사람들이 좀비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쳐서내가 맨손으로 잡아서 밖으로 날려 준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비둘기를 만졌으니 구급상자에 있는 알코올로 손을 소독하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비둘기를 향한 인간들의 공포와 혐오는 어디까지일까?

yang16.md#0320

재작년 미술 잡지에 젊은 퀴어 작가가 노년 퀴어에 관한 작품에 대해 "퀴어로서의 특수성과 노화라는 보편성의 결착이 엇나간 사례로 보는 일은지양되어야 하며 오히려 퀴어의 고통이 이젠 소수만의 번민이 아니라는 반증으로 여겨져야 한다. 전통적인 모든 관계는 와해되었고 여타의 자족적공동체를 토건 하여 능동적인 삶을 조직할 가능성 또한 소멸되었기에 혼자 외롭게 늙어 죽는 사태는 독신 퀴어에게만 상상되는 유형의 종극이 아니다." 라고 리뷰를 썼던 젊은 남성 비평가이자 기획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결혼제도만 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도 국가에서인정하는 법이 없어 결혼을 못 하는 퀴어들이 수두룩한데, 어쩌면 저렇게 퀴어에 대한 기본 지식과 정보도 없이 본인 생각을 리뷰라고 당당하게 써놓은 걸까? 저것도 권력이겠구나 싶었다.

yang17.md#0321

어느 미대 교수님과의 대화 중에 요즘 미대 학생들은 어떤가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본인 학교 신입생중에 MTF 트랜스젠더 학생이 새로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 신입생은 학교에서 잘 지내는지 혹시 다른 학생들에게 차별당하는지 않는지 물었더니, 차별은커녕오히려 타학생들에게 외모 지적 패션 지적을 하고 다니며 잘지내고 있다고 했다. 

yang18.md#0322

몇 년 전, 게이 크루징 관련 전시를 하면서 작가와의 대화 때,

찜방 (게이 사우나)를 많이 가봤냐는 질문에 별로 안 가봤다고 답변했었다. 그 당시 현장에 관객으로 왔던 어떤 분이 이 답변을 마치 "나는 그런 더러운 곳 안 가요"라는 뉘앙스를 풍겼다며 뒤에서 험담을 하고 앞으로 내 작업에 더 이상 흥미도 없고 관심 갖고 싶지도 않다는 얘기를 다른 사람을통해 얼마 전에야 듣게 되었다. 전화를 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오해를 풀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관두기로 마음먹었다.

yang19.md#0323

드랙 공연에 사진 촬영을 의뢰받아 공연장에 가기로 했다. 공연 전 날 도시락을 미리 주문받는데 비건 메뉴가 보이길래 비건은 아니지만 비건 도시락으로 주문했다. 당일 다 같이 도시락을 배급받아 먹는데 같은 테이블에 나를 포함해 서로가 논비건인 사실을 아는 작가 세명이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모두가 비건 도시락을 주문한게 보였다. 서로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비건 아니신 거 아는데 왜 비건 도시락 골랐냐며 물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왠지 공연에 참가하는 많은 분들이 비건이신 것 같아서 눈치 보여서요 ..."라고 답했는데, 다른 작가분은 "이렇게 고기 한 끼 줄이면서점차 비건 실천을 하는 거죠. 좋지 않아요?" 라고 대답해서 내 대답이 부끄러워졌다.

yang20.md#0324

드랙 아티스트를 촬영한 전시에 갔다가 각 아티스트들의 인터뷰 영상을 봤는데, 같은 질문에 어떻게 저렇게 각자 다른 대답을 하는지, 보다가 깜짝놀랐다. 드랙이라는 단어로 묶기에도 생각하고 추구하는 바가 저렇게 다른데, 퀴어라는 단어로 우리 존재를 한 카테고리 안에 묶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yang21.md#0325

올해 초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트랜스젠더 3분의 연속 부고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 나의 파트너 역시 상심한 채 두문불출하다가 며칠 만에 연락되어서 오랜만에 작업실에 가보니 김기홍 씨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미술 작가로서의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그렸다고 했다. 몇 달 후 전국을 순회 중인 지인 퀴어 기록 활동가의 사진 전시에 같이 가면서 그 초상화를 챙겨와 다른 활동가분에게 기증하면서 그 당시의 얘기를 했고, 그곳에 있던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yang22.md#0326

사랑하는 동료이자 친구인 전나환 작가가 2021년 12월 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곳에선 제발 아프지말고 하고싶었던 작업 마음껏 할 수 있기를.

yang23.md#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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