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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반갑.mp4
04.환영.mp4
05.나.mp4
06.메타.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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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수어.mp4
10.어렵다.mp4
11.하지만.mp4
12.열심히.mp4
13.공부.mp4
14.기술.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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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저녁*,* 홍제천 바위들이 있다*.* 다각형의 모습*,* 긴 타원형의 모습*,* 어딘가 좁혀지고*,* 각이지고*,* 어딘가는 둥근 열댓개의 바위들이 서로 맞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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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멀리 가로등이 빛나고 홍제천 옆 벤치 뒤로 커다란 코스모스 꽃 조형물이 있다*.* 분홍빛 딱딱한 꽃잎들이 활짝 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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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천 옆에 바위들이 나열되어 있다*.* 흐릿한 갈색*,* 황토색*,* 회색빛 미세하게 다른 모습들이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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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앞에 광주리와 바구니가 주렁주렁 달린 트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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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본에서 베껴 잘라놓은 패턴지들이 문짝에 여러 겹으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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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솔을 친 가판대에 ‘토스트’라고 쓰여진 전광판이 붙어 있고, 2명의 손님이 토스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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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로 벽면을 만든 허름한 매장 기둥에 선풍기 2대가 돌아가고 있고, 벽면에는 달력과 검은 비닐 봉지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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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안쪽으로 실패가 잔뜩 쌓여 있는 선반이 보이고, 오른쪽엔 ‘옷수선’이라 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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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마술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효과를 산출하기 위해 일정한 절차에 따라 실천하는 행위이다. 한 가지가 다른 한 가지를 대체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의상으로 이 두 가지 활동은 대등하다.
사실 한 뿌리에서 나온 이 두 활동에 대해 많은 저자들이 대비를 통해 말했지만, 벤야민만큼 이 두 활동에 대해 선명한 이미지를 새기고 글을 쓴 저자도 드물 것이다. 가령 이런 부분을 보자.
“외과의사는 마술사와는 극단적으로 대조가 되는 사람이다. 손을 얹어 환자를 낫게 하는 마술사의 태도는 환자의 몸에 깊숙이 손을 대는 외과의사의 태도와는 다르다. 마술사는 자신과 환자 사이의 자연스러운 거리를 계속 유지한다. 더 정확히 말해 마술사는 환자 위에 얹은 손을 통해 환자와의 거리를 좁히기도 하고 또 그의 권위를 통하여 그 거리를 크게 벌리기도 한다. 이에 반해 외과의사는 환자에게 정반대의 태도로 접근한다. 즉 그는 환자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감으로써 환자와의 거리를 크게 좁힌다. 물론 그가 환자와의 거리를 약간 벌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다만 그가 환자의 내부기관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룰 때뿐이다. 요컨대 외과의사는 마술사와는 달리 (일반의에게도 마술사적인 면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환자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수술을 통하여 그의 내부로 파고들어간다. 마술사와 외과의사의 관계는 화가와 카메라맨의 관계와 같다. 화가는 주어진 대상에 자연스러운 거리를 유지하는데 반해 카메라맨은 작업할 때 주어진 대상의 조직에까지 깊숙이 침투한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이 얻게 되는 영상은 엄청나게 다르다. 화가의 영상은 하나의 전체적 영상이고, 카메라맨의 영상은 여러 개로 쪼개어져 있는 단편적 영상들로서, 이 단편적 영상들은 새로운 법칙에 의해 다시 조립된다.” ― 벤야민[1936],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제2판](최성만 역, 길, 2007)에서.
대상을 하나의 전체로 대하는 마술사-화가. 분석 후 종합하는 외과의사-카메라맨. 전통적으로 기술을 바라보는 근대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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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행위의 전인성(全人性)을 강조하는 두 텍스트.
“나는 그저 그들이 공학기술로부터 도피하고 공학기술을 증오하는 가운데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패배자로 만든다고 생각할 뿐이다. 신성한 부처님은 산 위에서나 연꽃잎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편안하게 디지털 컴퓨터의 회로 안에, 그리고 모터사이클의 변속기 안에 정좌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처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나아가서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 된다.” ― 로버트 M. 피어시그[1974],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장경렬 역, 문학과지성, 2010)에서.
“어쩌면 그[스스로 자기 차를 수리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는 밸브 트레인을 다시 원상태로 조립하는 데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해볼 작정이다. 이런 당당한 기개는 ‘자기 물건의 주인’이 되려는 열망을 통해 탐구정신과 연계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랑스러운 ‘자립’의 근간이다.
간혹 이런 자부심은 깊게 생각하면 자신의 이익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령 사람들은 자동차를 직접 수리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은 대체로 이런 자부심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기회비용의 개념은 인간의 경험이 ‘대체’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그것들이 시계 시간이라는 추상적 통화로 단순화될 경우에 동등하게 취급되거나 서로 교환될 수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확장하는 경제학의 영향력에 맞서 우리는 당연히 자신이 직접 체득한 것, 소위 ‘인간 경험의 특수한 이질성’을 고수해야 한다. […] 경제학은 오직 특정한 가치들만 인정할 뿐이며 가장 중요한 가치들은 인정하지도 않는다. [직접 자신의 자동차를 수리해보겠다는] 기개는 자신의 위엄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며, 자신의 자동차를 직접 수리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자동차, 자기 자신에 대해 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다.” ― 매튜 B. 크로포드[2009], ⟪손으로, 생각하기⟫(윤영호 옮김, 사이, 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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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를 고치는 기술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기술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 세탁기는 분명히 우리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고장난 세탁기를 다루는 경우에는 세탁기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런 순간에 기술(technology)은 더 이상 세상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을 확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자기도취에 대한 모욕이다. 끊임없이 자기확인을 하는 자기도취자는 만물을 자신의 의지가 확장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아주 터무니없이 물질의 세계를 별개의 것으로 이해한다. 자기도취자는 마술적인 생각과 전지전능의 망상에 빠져들기 쉽다. 반면 수리기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을 수리한다. 수리기사는 실제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물건들에 더 확실한 통제력을 발휘한다. […] 수리기사는 작업을 할 때마다 항상 머리를 비우고 감각적으로 그 대상을 살펴야 한다. 고장난 기계의 상태를 세심히 살펴보고 소리도 주의깊게 들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 매튜 B. 크로포드[2009], ⟪손으로, 생각하기⟫(윤영호 옮김, 사이, 2017)에서.
“농부는 물길을 내어 물을 대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대를 곧게 한다. 목수는 나무를 구부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 ― ⟪법구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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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와 결과의 동시성. 그리고 이 동시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전통적인 실기 직종별 공동체에서는 기능이 대대로 전수되는 탓에 기능 자체가 아주 경직됐을 거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예로 고대의 도자기 제작은 점토를 받치는 데 회전돌판이 도입되면서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새로운 점토 성형 방식이 속속 뒤따랐다. […] 우리 생각에는 요리사든 프로그래머든 훌륭한 장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열중한다고 짐작하기 쉽다. 즉 주어진 과제의 해결책을 찾아 문제를 마무리하는 게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일에 임하는 장인의 입장에서는 일을 일 자체로 중시하는 태도가 아니다. 리눅스 공동체 네트워크에서는 ‘버그’ 하나가 제거될 때마다, 전에 없던 코드 활용 방법이 새로 등장할 때가 많다. 코드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지, 마무리돼서 고정되는 대상이 아니다. 리눅스 세계에서는 문제를 푸는 일과 문제를 찾는 일이 거의 순간적으로 이어진다.” ― 리처드 세넷[2008], ⟪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김홍식 옮김, 21세기북스, 201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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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 벽에 스테인레스 걸이대가 설치되어 있고, 거기에 온갖 부엌 도구들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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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구조물과 그 위에 쌓인 모래, 그리고 철 구조물, 그리고 멈춰선 열차의 앞부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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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수리공사’ 간판이 붙은 가게 앞에 유리판들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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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장으로 보이는 허름한 건물에 검은 차양이 쳐져 있고, 그 앞을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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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양을 친 가게 입구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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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에 철물점이 보이고, 오색으로 빛이 흩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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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의 전면에 온갖 잡다구리한 공구와 빗자루 들이 진열되어 있고, 위쪽엔 전화번호가 표시된 전광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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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로서의 대상-자연을 분해하고 재합성하는 기술은 더 나아가 그것을 수단화한다. 몇 세기 동안 기술은 실제로 이런 식으로 달려왔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후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한 비판에 동참한다.
“이와 달리 우리는 어느 한 지역을 석탄과 광석을 캐내기 위해 도발적으로 굴착한다. 지구는 이제 한낱 채탄장으로서, 대지는 한낱 저장고로서 탈은폐될 뿐이다. 농부들이 예전에 경작하던 밭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의 경작은 키우고 돌보는 것이었다. 농부의 일이란 농토에 무엇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려 싹이 돋아나는 것을 그 생장력에 내맡기고 그것이 잘 자라도록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농토 경작은 자연을 닦아세우는,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경작 방법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이제는 그것도 자연을 도발적으로 닦아세운다. 경작은 이제 기계화된 식품 공업일 뿐이다. 공기는 이제 질소 공급을 강요당하고, 대지는 광석을, 광석은 우라늄을, 우라늄은―파괴를 위해서든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든―원자력 공급을 강요당하고 있다.” ― 하이데거[1962], ⟪기술과 전향 Die Teschnik und die Kehre⟫(이기상 역, 서광사, 197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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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까지 가지 않더라도 디지털 기술의 변화에 대한 언명들은 내 취향에서 볼 때 너무 화려하다 싶은 면이 없지 않다. 물론 “거창한 생각은 거창한 말에 담아야 한다”(앤 셜리)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혁명’으로 느끼는 것은 사실 그 이전을 경험한 세대들이고, 정작 태어났을 때부터 그 변화를 향유하고 있는 세대는 오히려 그 거창한 수사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굳이 경탄을 강요해야 할 이유도, 심드렁해서는 안 될 이유도 없다.

생각해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사과나무 이파리가 광속으로 전달되는 정보보다 덜 놀라울 까닭은 없는 것이다.

“회의장에는 1리터짜리 유리병에 든 에비앙 생수가 제공되었다. [……] 나는 과거의 내 기차 시간표 덕분에 에비앙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 이 무거운 생수병들은 거의 유럽의 3분의 1을 돌아 대서양을 건넌 후, 캘리포니아까지 다시 3,000마일을 더 여행한 것이다. [……] 오늘 내가 에비앙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 아톰과 비트 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국제 무역은 전통적으로 물질, 곧 아톰을 교환하는 것이다. 에비앙 생수는 크고 무거운 불활성 물체를 많은 비용을 들여 조심스레 천천히 선적한 후 여러 날 동안 수천 마일을 거쳐 전달된다. 세관을 통과할 때에는 비트가 아니라 아톰임을 밝혀야 한다. [……] 그런데 이러한 사정이 매우 빨리 변하고 있다. 책, 잡지, 신문, 비디오 카세트처럼 사람이 직접 손으로 취급하던 정보가 플라스틱 조각에 녹음된 전자 자료 — 값싸고 직접적인 전달 체제 ― 로 변하여 광속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해서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 아톰에서 비트로 변화하는 추세는 돌이킬 수도, 막을 수도 없다.” ― 니콜라스 네그로폰테[1995], ⟪디지털이다⟫(백욱인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1996)에서.

네그로폰테는 유형의 아톰보다 무형의 비트가 더 큰 가치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를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중력의 지배를 받는 물질 세계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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